토요일 저녁에 나는 미사에 갔다.
모임이 끝나고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미사를 하러 갔을 때 성당이 공사 중이어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성모님의 손을 잡고 “엄마,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앉았습니다.
미사 중에 옆에 앉은 사람이 한동안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서 뒤를 돌아보니 가방에서 뭔가를 찾았습니다.
못찾은 듯 한동안 바스락거려서 속으로 불만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바닥에 핫팩을 바르고 신발을 신었다.
그는 또한 그것을 발에 두었습니다.
아이고… 마음이 아팠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마리아의 동생이었다.
이 형은 결혼 전 직업이 간호관이었다고 한다.
시력이 좋아 친해지기가 좀 힘들다고 하던데 히야친타 형님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까다롭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형편을 한탄하며 살았다고 한다.
딸 셋을 두고 있지만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이 조금씩 보내주는 돈과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 살 돈이 없어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인물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나약해지고 돈이 있든 없든 힘들다.
돈이 있으면 자식이 와도 돈을 보러 옵니까? 그리고 돈이 없으면 애들이 잘해줘도 섭섭하다.
그러지 못하면 속상하고 내가 살아온 날들이 헛되다.
저번에 모임에서 친구들에게 20대로 돌아가느냐고 물어보니 나 빼고 4명 모두 돌아간다고 했다.
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데.. 친구가 아파트 서너 채를 소유하고 있어서 이번에 한창일 때 팔았다고 합니다.
나는 현금 부자가 되어 기쁘고 또 다른 친구는 그 틈에 투자하고 이자만 100만원 받고 은행에 갔다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세 친구 모두 유방암과 전이를 가지고 있는데, 한 명은 자궁에, 한 명은 폐에 전이가 있었고 몇 년 동안 정기 검진을 위해 서울에 다녔습니다.
그래도 그는 돌아가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았나? 정말 이 땅에 다시는 안오겠다고 하면서 살아요…
매화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잠시 산에 가고 싶어도 집에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요?
나는 다시 앉았다.
천가게 아줌마가 준 천으로 스키니팬츠와 재킷을 만들고 남은 천으로 베스트를 하나 더 재단했다.
내가 먹고 있는 약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계속 잠이 든다.
여자로서의 웃짜노?